(‘화성침공’: 1996년작, 감독: 팀버튼 ,주연: 잭니콜슨,피어스브로스넌,글렌클로즈)
화성인의 언어와 지구인의 언어를 자동으로 통역해 주는 기계의 발상이 재미있는데, 요즈음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기계번역(machine translation)이 지구의 언어들 사이의 자동 번역임에 비해 한 걸음 앞선 것이다. 또, 그것보다도 이 영화에서 보이는 언어 사용의 근본 원리의 위반이 황당한 즐거움을 준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에는 '서로 협동한다'(cooperative)는 대화의 격률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대화하며, 약속을 할 경우에는 그것을 지킬 의지가 있다고 믿고 실제로 약속을 한다. 돈을 줄 의지가 없으면서 '내일 만원 준다고 약속하마'라고 해 보아야 약속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의 화성인들은 'We come in peace'라고 말하고는 비둘기와 사람들을 광선총으로 쏘아 죽인다. 첫번의 교전 이후 그것에 사과한다고 전한 후 의회에 등장한 특사는 의원들을 향해 광선총을 난사한다. 프랑스 대통령과 협정을 맺는 자리에서 사인을 한 후 총을 난사한다. 그리고 지구인들을 마구 공격하고 죽이면서도 "Don't run. We are your friends."라고 외쳐 댄다. 결국 화성인은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을 부정한다. 마침내 지구인들이 화성인의 머리를 터지게 하려고 들려주는 노래의 가사에 "나는 그대에게 사랑을 보낸다"는 말이 나옴으로써 지구인들도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으로 결말지어진다.
(2) 고유명사에 관하여
(‘연애소설’:2002년작, 감독 :이한, 주연 :차태현,이은주,손예진)
주의를 끄는 영화의 설정은, 경희와 수인 두 여자가 실제로는 이름을 바꾸어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영화의 전반부에서 경희는 '수인'으로 불리고 수인은 '경희'라고 불린다. 그들이 그렇게 이름을 바꾸어 부르는 이유는 상대방을 늘 가까이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경희에게 '수인아'라고 부른다면 경희는 수인을 바로 곁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희는 수인이 될 수 없고, 수인은 경희가 될 수 없다. 영화의 후반부를 본 다음에 나는 손예진(영화 전반부의 '수인', 실제 이름 '경희')을 '경희'라고 부르고 이은주를 '수인'이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다.
'미스 코리아' 혹은 '아이'와 같은 표현들이 시간과 세계에 따라 다른 지시체를 갖는 데 비하여 이름을 포함한 고유명사들이 늘 동일한 개체를 지시한다. 역사적으로 어떤 한 시점에 자격을 가진 사람이 표현(이름)과 지시체를 연관시킴으로 지시의 관계가 성립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역사적으로 이어 내려온다. '손예진'이라는 표현이 손예진을 가리키는 것은 그 부모가 어떤 한 시점에서 그 이름을 지어서 불렀기 때문이고, 다른 언중은 그것을 존중한다.
(3) 영화의 성격에 따른 의미 변화
(‘살인의 추억’: 2003년작, 감독 :봉준호, 주연 :송강호,김상경)
언어가 상황이나 영화의 성격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로서 ‘살인의 추억’을 들 수 있다.
“빨간옷”은 그저 색깔이 빨간 옷이라는 의미이고, “비오는날”는 비가 내리는 날을 뜻할 뿐이다. 이 영화에서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범인은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살해하는 범행습관을 보인다. 그 때문에 이 말들이 일상적인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기 위한 중요한 단서’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미스테리, 범죄물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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