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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4일 화요일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전공 학업계획서

1. 지원학과(부) 또는 전공분야를 선택하게 된 동기
우리나라사람들은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를 만들어 부를 정도로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국제사회에서 독도는 대부분 분쟁지역 또는 일본의 영토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국제관계에서 강대국들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SOFA문제도 그렇다. 독일, 일본, 필리핀 등 여러 나라에 미군이 있지만 우리가 가장 불리한 조건의 지위협정을 맺고 있다. WTO체제 하에서 국가 간의 분쟁은 날로 커지고 있으며,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의 필요성 역시 늘어나고 있다. 더군다나 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외교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고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강대국의 입김에 휩쓸려 다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국제정세에 관한 통찰력과 뚜렷한 자기 소신을 바탕으로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외교관이 되기 위해 외교학과를 선택했다.

2. 대학재학 중 학업계획
대학을 다니는 동안 외교관으로서 필요한 기본적 역량을 다지는데 중점을 두고 공부할 계획이다. 그래서 정규교과를 폭넓게 공부하는 외에도 외국어를 열심히 배울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활동한다면 한글을 쓰지 않는 외국인들에게 내 자신의 견해를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중학교 때부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 온 영어를 바탕으로 불어와 독어를 익힌 뒤 중국어, 일본어를 차근차근 배워갈 것이다. 그리하여 졸업할 때까지 최소한 5개 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방학을 이용해 해외 배낭여행의 기회를 자주 가질 생각이다. 외교 역시 결국에는 사람사이의 대화라는 점을 생각할 때 상대방의 문화적 배경과 그에 따른 사고방식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 문화를 직접 겪어 보면서 여러 문화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을 쌓으려고 한다.
그밖에도 국사연구 동아리에 들어가 고등학교까지는 암기에만 치중해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국사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공부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잊혀져 가는 우리 고유의 문화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다. 세계 속에서 한국을 위해 일하는 외교관으로서 자신의 뿌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서 폭넓은 공부를 하면서 3학년이 되면 외무고시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충분한 여유가 생기면 대학원에 진학해 통일 외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공부해 보겠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통일 외교에 필요한 밑바탕을 쌓고 싶다.
이러한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 국가 간의 문제에서 국익을 위해 일하고 통일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외교관이 되는 것이 나의 궁극적 목표이다.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전공 학업계획서(작성요령)

Ⅰ. 학업계획서의 의의 & 구성요소 & 작성요령

1. 학업계획서란?
학업 계획서란 자신이 지원하는 대학에 대한 입학 동기와 대학에서의 학업 및 활동계획, 그리고 장래 포부 등을 기술하는 글이다. 즉, 학업계획서는 대학에서 단순히 어떻게 지내겠다는 계획을 미리 듣고자하는 의미를 넘어서,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의 학문 분야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또한 그 분야에 대한 열정과 안목, 태도를 통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어필하는 글이다.
이는 입시 지원자의 수학 능력이 수능성적이나 학생부 등을 통해 이미 객관적으로 검증되었다 하더라도, 그 대학의 학과 선택에 대한 뚜렷한 동기나 목적의식이 없다면 입학 후 자신의 전공에서 성취감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지원자의 지원동기가 확실한지, 그 분야를 전공에 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은 갖추고 있는지, 그 분야의 공부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는 기본자세가 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 보는데서 큰 의의를 갖는다.

2. 학업계획서의 구성요소
서울대학교의 2008학년도 학업계획서를 보면 “① 지원학과(부) 또는 전공분야를 선택하게 된 동기를 400자 내외로 기술하여 주십시오. ② 대학 재학 중 학업계획(정규교과 이외의 교내 ․ 외 활동, 적성 및 능력계발 계획 포함)과 대학 졸업 후 희망진로를 800자 내외로 기술하여 주십시오.”의 두 가지 요소를 주문했다. 이를 놓고 보면 학업계획서는 크게 ① 대학지원 동기, ② 대학 재학 중 학업계획, ③ 대학졸업 후 희망진로 등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 학업계획서 작성요령

(1) 대학 학과(부) 지원동기
학업계획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망 동기이다. 단순히 직업을 위해서라거나 출세하기 위하여 지망하는 것을 대학 교수들은 원치 않을 것이다. 자기가 그 학과에 왜 지망하는지에 대해 진실하게 쓴다. 이 지원동기가 설득력을 지녀야 좋은 학업계획서이다.
수험생 자신이 왜 이 학교를 택했으며, 무슨 이유로 해당 전공에 깊은 흥미를 느꼈는지를 선명하게 나타내야 한다. 그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것을 구체적으로 써도 좋다. 그리고 자신의 적성이나 장래 희망과 지망하는 전공분야의 연관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한다. 또한 각 대학마다 독특한 학풍이 있으므로 해당 대학의 학풍이 들어간 수학계획서는 호감을 준다.
한 가지 유의할 것으로는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문하는 곳이고, 교수는 이론 연구에 평생을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지원 동기를 단순히 직업이나 출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서술한다면 면접관(교수)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2) 대학생활 중 학업계획
대학 진학 이후에 어떤 분야를 어떻게 관심 갖고 공부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장단기 계획으로 나누거나 학년별로 서술하면 체계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세부 전공으로 들어가, 어떤 분야를 선택할 것인지, 왜 그 분야를 더 공부하려는지, 지금까지의 자기 관심도에 비춰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때 지나치게 전공 분야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전문 분야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자신이 있다면 괜찮은 방법이지만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교수들은 조금 안다고 건방진 태도보다 조금 공부가 부족하더라도 겸손하고 성실한 인상을 주는 것을 더 선호한다. 면접관이 설익은 지식과 정보를 좋아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학과 외의 활동 계획은 해외여행, 어학연수,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 등에 대해서 특별히 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서술한다. 이 부분에선 가능하다면 창의성과 능동적인 활동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좋다. 다른 수험생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영어와 제2외국어, 컴퓨터 활용 능력 등 학문의 기초 영역에 해당되는 공부 계획을 언급하는 것이 좋다.
아무튼 대학생활 중 학업계획에서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바로 실현 가능성이다. 자신의 학업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담아내는 것은 필수이지만, 허황되지 않은 수준에서의 학업계획이 중요하다. 대학 재학 중 어학공부를 충실히 하여 영어와 제2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겠다는 계획은 가능성이 있지만,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일본어 등 7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겠하는 말은 왠지 실현 불가능한 계획으로 보일 것이다.

(3) 대학졸업 후의 진로
졸업 후의 진로는 해당 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사회에 나가면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단순히 어떤 직업을 선택하겠다고만 서술하는 것보다 자신의 선택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과의 특성상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는 일정부분 제한돼 있기 때문에 졸업한 뒤 어떤 직업을 택한다는 식으로 쓴다면 진부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하는 직업에 대한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해당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고 삶을 영위하겠다는 마음을 드러내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앞으로의 진로는 젊은이답게 패기를 드러내면 좋지만 조금만 강하게 서술해도 건방진 인상을 주기 쉽다. 대학생활 중 학업계획과 마찬가지로 실현가능성이 있는 계획을 제시하도록 한다. 노벨상에 도전하고 싶다거나 외국 대학의 교수가 되고 싶다는 등의 계획도 좋지만, 그 과정이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

(무료)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업계획서

1. 지원학과(부) 또는 전공분야를 선택하게 된 동기
저의 장래희망은 정치부 기자입니다. 정치부 기자는 사회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국내외 정치 현상 등을 잘 앎으로써 민주 정치 발전에 기여하고 정치 현상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국민들에게 전하는 역할과 동시에 권력을 비판하여 사회가 더욱 잘 운영될 수 있게 합니다. 즉, 시대적 흐름에 따른 국민의 올바른 사회관 정립을 위해 온 몸으로 뛰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지닌 정치부 기자는 부패하기 쉬운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정치를 바로 잡아 나가려는 의지와 정당과 정치인이 갖추어야할 자질과 그들이 해 나가야 할 일을 제시하는 학문 즉,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학과에서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쌓고 전문적 지식을 배워서 우리 사회의 올바른 민주의식의 정착을 위해 애 쓰고 싶어 이 학과에 지원했습니다.

2. 대학 재학 중 학업계획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어학입니다. 어학은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지역 정치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해당지역의 언어에 대한 지식은 그 지역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여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영어는 물론 제2외국어 하나 정도는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2학년 1학기부터 적용되는 부산대학교 부전공 제도를 이용해서 영문학을 공부할 것이고 TOEFL을 개인적으로 준비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배운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경시대회에서 수상경력이 있을 정도로 흥미 있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독일어를 독일 문화원을 이용해서 차근차근 공부할 것입니다.
정치외교학은 종합 학문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관련분야의 학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사회와 문명, 시대에 따른 철학 등을 같이 공부하면 정치외교학을 전공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따로 관련도서를 구입해서 혼자 공부하거나, 교양선택이 된다면 꼭 사회학에 대한 수업을 듣고 싶습니다.
정치외교학을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려면 앉아서 공부만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세계에 뛰어 들어 사회에 대한 좀 더 깊은 사고와 넓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유럽 배낭 여행을 가려고 합니다.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를 가장 가보고 싶고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적 장소인 프랑스도 가보고 싶습니다. 이 여행이 세계로의 제 시각을 넓히고 세계의 여러 문화를 경험하면서 정치학의 역사에 대한 사고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3학년 2학기부터 신문사 입사 시험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것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신문사에 찾아가서 기자님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경험으로 신문사 입사의 어려움과 시험준비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신문사입사 시험은 3과목의 필기시험과 논술시험, 면접시험 등 단계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먼저 필기시험은 국어, 영어, 상식을 치르게 됩니다. 지금 저의 생각으로는 국어는 한국 장단편 소설과 수험용 국어 참고서 등으로, 영어는 시사 잡지 중심의 실용 영어로, 상식은 시사 상식 책이나 신문 등으로 준비를 할 생각입니다. 논술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 주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주제로 제 의견을 적어나가면서 준비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빠듯한 계획이라 부담은 가지만 이러한 노력이 저의 삶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이 정도는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저의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귀교의 입학을 허락해 주십시오.

(무료)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업계획서(쓰는 방법)

Ⅰ. 학업계획서의 의의 & 구성요소 & 작성요령

1. 학업계획서란?
학업 계획서란 자신이 지원하는 대학에 대한 입학 동기와 대학에서의 학업 및 활동계획, 그리고 장래 포부 등을 기술하는 글이다. 즉, 학업계획서는 대학에서 단순히 어떻게 지내겠다는 계획을 미리 듣고자하는 의미를 넘어서,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의 학문 분야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또한 그 분야에 대한 열정과 안목, 태도를 통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어필하는 글이다.
이는 입시 지원자의 수학 능력이 수능성적이나 학생부 등을 통해 이미 객관적으로 검증되었다 하더라도, 그 대학의 학과 선택에 대한 뚜렷한 동기나 목적의식이 없다면 입학 후 자신의 전공에서 성취감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지원자의 지원동기가 확실한지, 그 분야를 전공에 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은 갖추고 있는지, 그 분야의 공부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는 기본자세가 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 보는데서 큰 의의를 갖는다.

2. 학업계획서의 구성요소
서울대학교의 2008학년도 학업계획서를 보면 “① 지원학과(부) 또는 전공분야를 선택하게 된 동기를 400자 내외로 기술하여 주십시오. ② 대학 재학 중 학업계획(정규교과 이외의 교내 ․ 외 활동, 적성 및 능력계발 계획 포함)과 대학 졸업 후 희망진로를 800자 내외로 기술하여 주십시오.”의 두 가지 요소를 주문했다. 이를 놓고 보면 학업계획서는 크게 ① 대학지원 동기, ② 대학 재학 중 학업계획, ③ 대학졸업 후 희망진로 등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 학업계획서 작성요령

(1) 대학 학과(부) 지원동기
학업계획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망 동기이다. 단순히 직업을 위해서라거나 출세하기 위하여 지망하는 것을 대학 교수들은 원치 않을 것이다. 자기가 그 학과에 왜 지망하는지에 대해 진실하게 쓴다. 이 지원동기가 설득력을 지녀야 좋은 학업계획서이다.
수험생 자신이 왜 이 학교를 택했으며, 무슨 이유로 해당 전공에 깊은 흥미를 느꼈는지를 선명하게 나타내야 한다. 그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것을 구체적으로 써도 좋다. 그리고 자신의 적성이나 장래 희망과 지망하는 전공분야의 연관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한다. 또한 각 대학마다 독특한 학풍이 있으므로 해당 대학의 학풍이 들어간 수학계획서는 호감을 준다.
한 가지 유의할 것으로는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문하는 곳이고, 교수는 이론 연구에 평생을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지원 동기를 단순히 직업이나 출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서술한다면 면접관(교수)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2) 대학생활 중 학업계획
대학 진학 이후에 어떤 분야를 어떻게 관심 갖고 공부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장단기 계획으로 나누거나 학년별로 서술하면 체계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세부 전공으로 들어가, 어떤 분야를 선택할 것인지, 왜 그 분야를 더 공부하려는지, 지금까지의 자기 관심도에 비춰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때 지나치게 전공 분야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전문 분야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자신이 있다면 괜찮은 방법이지만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교수들은 조금 안다고 건방진 태도보다 조금 공부가 부족하더라도 겸손하고 성실한 인상을 주는 것을 더 선호한다. 면접관이 설익은 지식과 정보를 좋아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학과 외의 활동 계획은 해외여행, 어학연수,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 등에 대해서 특별히 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서술한다. 이 부분에선 가능하다면 창의성과 능동적인 활동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좋다. 다른 수험생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영어와 제2외국어, 컴퓨터 활용 능력 등 학문의 기초 영역에 해당되는 공부 계획을 언급하는 것이 좋다.
아무튼 대학생활 중 학업계획에서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바로 실현 가능성이다. 자신의 학업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담아내는 것은 필수이지만, 허황되지 않은 수준에서의 학업계획이 중요하다. 대학 재학 중 어학공부를 충실히 하여 영어와 제2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겠다는 계획은 가능성이 있지만,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일본어 등 7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겠하는 말은 왠지 실현 불가능한 계획으로 보일 것이다.

(3) 대학졸업 후의 진로
졸업 후의 진로는 해당 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사회에 나가면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단순히 어떤 직업을 선택하겠다고만 서술하는 것보다 자신의 선택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과의 특성상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는 일정부분 제한돼 있기 때문에 졸업한 뒤 어떤 직업을 택한다는 식으로 쓴다면 진부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하는 직업에 대한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해당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고 삶을 영위하겠다는 마음을 드러내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앞으로의 진로는 젊은이답게 패기를 드러내면 좋지만 조금만 강하게 서술해도 건방진 인상을 주기 쉽다. 대학생활 중 학업계획과 마찬가지로 실현가능성이 있는 계획을 제시하도록 한다. 노벨상에 도전하고 싶다거나 외국 대학의 교수가 되고 싶다는 등의 계획도 좋지만, 그 과정이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

2010년 12월 13일 월요일

도교 문화의 중심 - 무당산

무협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무당산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중국 후베이성 북쪽 끝에 위치한 무당산은 단지 무협 소설에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산 자체도 매우 아름답고, 많은 도교 사원 건축물들로 유명하다. 이에 199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무당산은 또한 태화산이라고도 불린다. 무당산의 입구에서 표를 사면 정상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이 버스를 타면 험한 산줄기를 따라 곳곳의 기암 절벽과 골짜기를 지난다. 이 버스는 관광 명소마다 멈추어 관광객들이 보다 쉽게 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입구에서 정상까지 약 40여 분이 걸릴 정도로 산이 높은 편이다. 볼거리가 많은 곳에는 항상 정차하여 관광객들이 무당산의 지도를 보고, 스스로 여행지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무당산에는 버스 뿐만 아니라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있어 정상까지 편하게 오를 수도 있다.
무당산에는 고건축물들이 많은데, 이들은 태화궁(太和宫), 남암궁(南岩宫), 자소궁(紫霄宫), 우진궁(遇真宫) 등 4개의 건축물이 가장 대표적이다. 옥허궁(玉虚宫), 오룡궁(五龙宫) 및 기타 사원이 200여 개가 있다. 이 건축물들은 대략 5만 평방미터이며, 각 궁전의 면적은 100여 평방미터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매우 크다.
태화궁은 무당산의 천주봉(天柱峰) 남쪽에 위치하며 20여 개의 고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자금성(紫禁城), 고동전(古铜殿), 금전(金殿) 등이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자금성은 명나라 때 지었으며 천주봉의 꼭대기를 두루고 있다. 고동전은 원나라 때 지어졌으며 이름에 걸맞게 동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금전은 명나라 때 지어졌으며, 천주봉의 꼭대기에 있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동으로 만든 금동이 있는 곳이다.
자소궁(紫霄宫)은 무당산 고건축물 중 규모가 가장 크고 현존하는 건축물 중 가장 완정한 도교 건축물이다. 자소궁은 무당산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이다. 사원에는 36개의 금 기둥이 있으며, 옥황 상제의 조각상이 있다.
오룡궁(五龙宫)은 역사적으로 영험한 궁전으로 불린다. 기록에 따르면, 7세기 초 심한 가뭄이 들어서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이로인해 비가 오고 가뭄이 해갈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황실은 우당산에 더 많은 도교 사원을 건설하라고 칙령을 선포하였다.
우진궁(遇真宫)은 우당파의 무술 창시자인 장삼풍을 기리는 곳이라 무당산의 대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무당산의 고건축물들은 중국 고대 건축 장식 예술의 정화이다. 이곳에서 도교 문화가 시작되었고, 중국 도교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원이 명•청대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나라 때 오룡궁이 건축되었고, 명나라 때 여러 도교 건물이 건축되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때 사원들이 많이 파괴되었으나,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다시 복원되었고, 중국 정부에서 관광지로 더욱 개발되었다.
무당산을 관광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여름이다. 단지 날씨가 춥지 않아서 등반하기 좋다는 이유 뿐만 아니라, 산의 정상과 산 밑에서 무당의 무술 시범을 진행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무당산은 그 유명도에 비해서 관광지 개발이 덜 된 편이다. 그러나 요즘 점차 관광지 개발을 진행중이다. 무당산 근처에 공항, 대규모의 숙소를 건설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십언(十堰)시까지 기차를 타고 십언역에서 버스를 타면 30분이면 도착한다. 그러나 앞으로 공항 건설이 완성되면 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빠르고 쉽게 무당산의 자연과 사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진한 시대 분서갱유(焚書坑儒)

진한 시대에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정책으로 인하여 박해를 당한 유가사상은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서한시대에 유가사상은 통치자들에게 채택되었다. 그 후부터 음양,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가 이 6가 사상은 비교적 활발하였다. 그 중에 유가와 도가의 영향은 매우 컸다. 한나라 초기의 사회경제는 심각한 참해를 당하기 때문에 통치계층의 주요 임무는 생산을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무위이치(자연에 순응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지다)를 주장했고 경제적으로 경요박부(노역을 줄이고 세금을 낮추다)를 실행했다. 한 무제가 즉위한 후 사회경제는 이미 회복하여, 이후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주계층의 증가와 국력의 성장에 따라 농민에 대한 억압과 착취는 점차 심해져서 농민과 지주계층의 갈등은 격화되었다. 그래서 정치, 경제적으로 전제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통치자들의 절박한 필요로 나타났다. 하지만 무력만으로는 통치 할 수 없기 때문에 통치자들은 인과 예에 대해서 항상 도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하는 데에 유학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유학자들은 군주가 예법을 따르고 모범적인 행동을 하면 덕을 얻을 수 있으며 그러면 국민들이 군주의 통치를 인정할 것이며 심지어는 존경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한 무제는 동중서(董仲舒)의 건의를 받아들임으로써 유교는 국가적 교학이 되어 그 지위를 굳혔다.

중국자동차보험시장분석

개요: 최근, 자동차가 급증, 도로 기초시설 약해, 교통 운송관리 낙후, 사람이 법적 의식 약하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빈번 발생한다. 생명을 잃게 되고 재산손실을 초래했다. 그럼으로 자동차보험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깨달았다. 자동차 보험은 중국재산보험회사의 주요 경영항목이 되었다. 하지만 자동차보험시장의 발전 중에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본 논문 지금 중국자동차보험시장의 발전현황과 문제점을 제시했다.
1. 중국 자동차시장의 현황
2003년1월1일부터 기동차량통일보험을 해지 후에 자동차보험요금이 전면 시장화 된다. 이번 개혁은 자동차보험의 요금을 각 보험회사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된다. 중국 자동차보험이 시장화 추진의 중요한 수단이다. 신 제도는 자동차보험요금이 통일하는 것을 변하게 된다. 차량의 모델, 차량의 상황, 지역, 사람에 따라 요금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고객들에게 보험요금을 푹 넓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제공된다.
(1) 보험요금이 차로 결정된다.
개혁후의 자동차보험 요금은 개인차량, 상용차량, 운송차량 등 종류로 나누었다. 부분 보험회사 국제통용 보험표준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평안보험회사가 동복, 화복, 화남 등 지역의 자동차보험 비용을 자세히 분석하고 각 지역의 문화 및 경제환경 등 결합하여 자동차의 모텔을 지역별로 구분된다. 같은 상타나2000모텔이 지역에 따라 도난을 당하면 보상차이가 크다. 상타나2000는 한 도시에서 도난을 많이 하는 자동차이고 다른 한 도시에서 도난률이 작기 때문이다.
(2) 보험요금이 인간적이다
개혁은 보험회사가 고객의 분석과 연구를 많이 투입했다. 고객에게 상황에 따라 같지 않은 보험종류를 적용한다. 서비스가 더 세밀화, 인간적이다. 예를 들어 평안보험회사는 과거 배상청구조사 결과에 의해 즉 여성 기사가 남성기사 교통사고 낮다는 것을 여성기사 운전하는 자동차 주인에게 보험요금이 혜택을 주고 있다. 그리고 운전경력이 2년 이상의 경우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 중국자동차시장에서 존재하는 문제점
(1) 제품단일 기술이 낮다
a. 신 보험조항이 모호, 불합리적이다. 각 회사의 신 보험조항이 예전 보험보다 용언이 많이 신중하게 했지만 모호와 불합리의 항목이 여전히 존재한다. 심지어 전후 모손한다. 더 개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 보험회사 보험이 차량손실의 조항 중 보험계약은 보상금이 정하지 안은 계약이라고 한다. 즉 계약쌍방이 사전 보상금을 정하지 않는다. 사고 발생할 때 손실의 실제 가치를 보상금을 정한다. 하지만 배상처리조항에서 보험차량의 실제가치를 의해 보상금을 정한다. 손실액은 보험차량의 실제 가치보다 초과했을 때 보험차량의 가치로 보험금을 지불하고 보험차량의 실제 가치보다 적다는 경우 실제손실액으로 지불한다고 한다. 사고를 발생하면 보상금을 보험가입비와 신차의 구입가격비율로 계산한다. 하지만 보험차량의 실제 가치를 초과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이상의 조항을 보면 전후 모순된 느낌이 든다. 보험계약서가 보상금을 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차량사고가 발생할 때 손실이 차량가치 보다 클 경우 차량가치만 보상해 주는 것이다.
b. 보험책임이 확실하지 않는다
차량사고원인의 조사에 따라 80%로 차량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각 보험회사의 조항에서 차량충돌에 대해 책임조항이 자세히 규정하지 않는다. 충돌책임이 다른 차량손실보험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차량충돌보험만 들려고 하는 고객이 들 수 가 없게 된다. 그래서 고객이 불만이 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보험내용이 달라야 하는데 자세한 항목이 없다. 보통 고객이 만난 힘든 상황만 넣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륙 지역에서 불가능한 해소, 평원지역에서 불가능한 눈사태, 산사태 등 있다는 것은 개성이 있는 차량보험개혁의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2) 보험시장이 위험성 크다, 전체자질이 낮다
a. 불 규범적 경영
시장은 한 제도다. 그의 중요한 것은 질서를 제공한다. 모든 참여자가 최대 이익을 위해 옴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 예를 들어 성실적이고, 법을 지킨다 등. 그래서 양호한 시장환경에서 시장 주체가 자기 뭘 필요로 하는지 알고 그리고 어느 정도에서 습관적, 규칙적에 통해 다른 시장 주체가 어떤 반응과 행동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좋은 방법과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즉 양호의 시장 질서가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보험회사 기업창의적 항목의 제시, 실시, 평가 등, 보험시장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시장질서 혼란하면 창의할 수 없다. 중국의 자동차보험시장이 시작하지 얼마 안 된다. 대부분 기업이 시작하는 계단이다. 시장을 보유하기 위해 고객을 쟁탈하다. 심지어 어떤 기업이 불 정당한 경쟁수단을 취한다. 예를 들어 권력간섭, 보험사기, 보험료 과하게 졸리다, 경쟁자에게 악담, 경영비밀도난, 같은 기업의 인재를 빼앗다 등.
b. 사회신용기초 약하기 때문에 보험업의 신용체계에 영향을 초래한다. 중국사회주의신용체계의 건설이 지금 시작이다. 보험회사의 신용도 측정곤란, 신용도의 개방은 규정이 없다. 신용자료의 건립이 낙후, 신용법규 결핍, 신용불량 행위가 징벌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보험업 신용건립에 영향을 미친다. 보험회사신용관리제도의 결핍이 보험업 신용체계건설을 억제했다. 보험회사가 경영 및 관리에서 실수를 피할 수 없고 보험계약에서 정보가 맞지 않은 객관적인 현상이 있기 때문에 신용불량의 원인이 초래된다. 자동차보험고객, 보험회사직원 및 경영직원 등 신용정보의 건립과 적당한 측정지표가 아직 없다.
(3) 적당한 법률 법규가 없다, 감독체계 낙후
중국”보험법”은 보험계약의 법규가 세밀하지 않는다. 자동차보험의 경영과정 중에 쟁점을 많이 초래했다. 주요 문제점은 계약서의 성립, 효력의 발생 및 책임의 확립 등. 그래서 실제에서 사고 발생할 때 보험조항의 유효성의 문제가 항상 고객과 보험회사의 쟁점을 된다. 보험자면책조항의 명확한 설명 의무에 대해 보험자가 어떻게 의무를 이행하는지 보험법에서 확실의 규정이 없다. 그래서 고객과 보험회사 각자의 생각이 고수하다. 계약조항의 해석은 “쟁의”있는 것이 뭔지 불일치하다. 배상다툼이 발생할 때 당사자가 항상 의견이 불일치하다. 즉 “쟁의” 있다. 항상 보험자에게 불리의 판결을 한다. 그리고 중국보험법에 근인원칙이 없다. 근인원칙의 실천과 응용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자동차보험의 다툼이 빈번하게 발생된다. 책임범위에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법 사법해석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3. 중국자동차보험시장에 추진의 건의사항
a. 보험기술 높이고 보험제품의 창신을 추진.
b. 과학적 위험을 피하는 매커니즘을 건립
c. 시장체계의 건설을 강화
d. 감독강화

헤어짐의 태도

이 영화 본후에 기분이 좀 복잡한다.주인공의 불행한 일을 만남에 대한 슬픈 느낌이 있고 주인공의 못한 사랑에 대한 아까운 느낌도 있다.눈물가지 흘리지 않지만 마음속에 많이 생각이 들었다.
정원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정원은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자기의 삶이 얼마 남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정리해 가는 중에 다림을 만난다. 아마 그때 마음속에서 갈등이 많이 생긴것 같다.자기 불질병을 걸린것은 다림에게 한말이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녀와의 사랑을 간직한 모습을 볼 수 있다.서로 사랑하는 말이 없지만 사랑하는 장면을 통해서 알 수 있다.날씨가 더워서 사진관에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농담을 치고 얘기한 장면이 있다.정원이 오토바이를 수리할 때 갑지기 비가 왔고 우산 없어서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거기 지나가는 다림이 봤다.그래서 다림이 우산을 갖고 정원이랑 같이 사진관으로 걸러 갔다.두사람의 옷이 거의 다 젖지만 계속 웃으면서 앞으로 가고 있는 장면이 잇다.손을 잡고 같이 놀이 공원에 놀러 가는 장면을 볼때 마음이 다뜻해졌다.드디어 두사람이 사랑했다.병 때문에 최종 두사람이 헤어질 수 밖에 없다.그래도 정원이 다림의 사랑 피하지 않는다.
누구나 병이 걸리고 마음이 평안할까?우리 정원 주인공이 마음이 얼마나 두려운지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이런 장면을 통해 일 수 있다.친그랑 같이 술 먹다가 경찰소에 가서 주변 시끄러운 소리 나는 사람에게 소리 치고 그와 싸운다.아빠와 같이 TV를 보고 아빠에게 리모컨 어떻게 쓰는지 가르쳤다.여러번 가르치도 아빠가 잘 못 쓴다.화를 내고 자기방으로 가 버렸다.밤에 잤다가 갑지기 비 오면서 천동치는데 무서워서 아빠방에 가서 아빠랑 같이 잤다.
아무도 마음에 갈등이 밚지만 시간 좀 지나다가 마음에 점점 차문해졌다.그 그할머니가 밤에 예쁘게 입고 사진관에 와서 사진을 다시 찍어 달라고 했다. 아마도 이 할머니가 사진 찍는 태도가 바꾸기 때문에 정원도 인생에 태도를 바꿨다.친구랑 같이 시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자기영성사진을 찍었다.
아마도 디림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이 남고 싶어서 병이 약화것은 다림에게 얘기안한다.하지만 디림이 사진 보면 마음이 다뜻하고 좋은 기억이 갖고 이 세상에 떠났다.
사실 사람이 이세상에 얼마마 있을지 누구나 알 수 없다.우리 할 수 있는것은 메일 파악하고 생활이나 공부나 가족이나 열심히 하고 진정한 마음이 갖고 지나간다.

양적 완화 ( Quantitative Easing)정책

지난 세기의 30년대 그레이트디프레션 (대공황)시, 세게 각국들은 수입 제품의 관세 인상 정책으로 수출을 증가 시키면서 자국의 경제를 회복하도록 시도했다. 이런 이기적인 행동으로 전세계가 경제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 국가들은 무역 보호주의를 포기하려는 협의가 이루어 졌다.. 이런 협약된 행동으로 경제 회복시키고 있다. 그러나 올해 이미 1만억 미국 달러를 쏟아붓는 미국의 국내시장 보호를 위한 정책들에 의해 달러 가치는 끊임없이 하락하고 있다. 주로 국가간에 “환율 전쟁”의 그림자에 휩싸였다. 재정 지출 확대와 이율 인하 등 방안들은 도움이 되지 않기에 각국들은 다시 수출 인상으로 경제 회복시키도록 시도하기 시작했다. 신흥 경제 국가들은 달러 인하에 자국의 화폐 절상 때문에 계속해서 외환 시장에 개입했다. 결국은 국가간의 정치 갈등을 일으켰다.
전 세계는 경제 균형을 추구하는 과정 중 미국은 중국의 위안화가 너무 평가 절화되어 있다고 비난하며 이에 대해 법안으로 제약할 예정이다. 일부분 국가들의 양적 완화 ( Quantitative Easing)정책 실시에 따라 각국은 계속해서 환율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EU, 일부 신흥 시장 국가들은 모두 환율 전쟁에 참석하였다. 브라질 재정 부장은 국제 환율 전쟁이 이미 시작했다고 경고하였다. 제일 격렬한 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환율 전쟁이다. 중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이 글로벌 환율 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외에도 많은 큰 규모 경제실제들이 계속해서 환율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미국은 무역순차에 달성한 중국에서 강력하게 위안화절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은 강력하게 반대하며 미국은 황당한 방식으로 자신의 경제 구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환율 문제는 유럽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중국와 미국의 환율전쟁은 일본과 신흥 경제 국가의 화폐 가치에 영향을 미쳐 환율 전쟁을 전세계에 퍼지게 하였다. 중국은 절하 가능성이 있는 미국 국채 대신 일본 국채를 구매함에 따라서 엔 시세는 15년 만에 최고가에 올라갔다. 이외에 세계 유동자금이 중국에서부터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 등 세계금융시장으로 유동함으로 이 국가들의 통화 가치 상승하게 하였다. 달러절하와 국가들의 양적 완화 ( Quantitative Easing)정책의 영향에 전 세계에 석유, 양식, 금 등 대량 자원 제품 선물의 가격은 앞으로도 대폭적인 상승을 유지할 것이다.
오바마는 미국은 중국에 대해 수출이 확대하고 취업증가시키기 위해 위안화를 절상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미국의 무역 불균형을 해결하고 취업 증가의 근본 수단은 위안화 절상 일 것이다. 중국 수출 기업은 위안화 환율의 이익을 잃으면 아래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일으킬 수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수출에 큰 영향이 없지만 핫머니(HOT MONEY)는 흑자의 방식으로 중국에 들어올 것은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수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며 수출은 감소하고 수입은 늘어나게 할 것이다. 핫머니의 진입은 거시경제의 조절에 위험을 증가시키며 수출을 감소하게 하고 수입은 증가하게 함으로 직접 결국은 첫째, 수출 주도형 경제를 유지하기 어렵고, 둘째, 자주 재정 소비는 반드시 실행해야 된다.
환율인상의 영향을 받은 수출업체는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수출업체의 전략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항구 및 운항업은 달러가치 상승으로 인해 이윤을 감축하게 되고 원가가 증가하여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수입은 증가해서 철광사 및 항공기업체는 인민폐 가치인상으로 수혜를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흑자감소는 중국 수출의 큰 통제를 초래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수출을 감축하고 무역량을 감소 할 예정이다. 중미무역은 균형으로 향한다. 인민폐 가치인상으로 중국내의 물가도 인상 된다. 유럽 미국 일본의 디플레이션 경제보다 중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의 상승기에 있다. 농산물과 생산성 원료의 가격 인상이 이번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근본 원인이다.

중독에 대한 정의 내리기

사회가 다양화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중독, 즉 인터넷 중독, 홈 쇼핑 중독, 알콜 중독 등의 신조어들이 출현하고 있다. 중독이란 어떤 상태에 완전히 빠져서 심리적, 육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생활에 해를 끼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먼저 중독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전에, 연구 대상의 표본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대상, 지역 등등)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의 나이, 인터넷 사용 시간, 인터넷에서 뭘 하는지 등등.
또한 중독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리기 위해 배경도 고려 해야 할 항목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 인터넷 중독이란 인터넷을 지나치게 사용함으로 인한 심리질병이다. 원인은 심리 원인과 사회적 원인으로 나눈다. 청소년들의 심리 및 신체적인 건강, 그리고 학교, 가정교육에 의한 영향을 받는다. 이런 배경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독의 분류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즉 중독의 정의를 세분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 인터넷 중독 유형은 몇 가지로 나눈다. 인터넷 게임 중독, 인터넷 친구 사귀기 중독, 인터넷 메시지 수집 중독, 컴퓨터 연구 중독, BBS중독 등 있다.
중독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중독 분류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독의 피해부분도 중독의 정의에서 다루어야 한다.
경험과 구체적인 조사 연구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 게임 중독 청소년들은 가상적인 인물에 지나치게 빠지기 때문에 현실 생활을 잃는다. 현실생활 중에서도 게임의 규칙에 따라 살고 있으니까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퇴학이나 유급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80%이상 학생들은 인터넷 중독 때문에 성적 미달로 나타난다.
다음에는 중독의 해결책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들은 아이들의 좋은 인터넷 사용 습관을 키우기, 풍부한 생활 활동을 만들기 등 많은 해결책도 포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독 여부의 테스트를 중독에 대한 정의에 포함 시킨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영화 속 주제의 변화(중국 영화)3

상기의 네 편 영화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2010년의 영화 주제에 대해 간단하게 분석 하고 설명하겠다. 지금 현재 중국 영화계는 액션 영화, 애정영화 등이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젊은층 사 이에서 새롭게 희극 영화에 대한 회귀현상이 보이고 있다. 이 것은 급속한 산업화에 의한 스트레스 증가를 희극 영화로 해소 하려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제는 희극 영화와 정 반대의 현실을 반 영한 영화 주제들도 많이 제작되고 있는 점이다. 세계화, 인터 넷의 발전으로 정부에 의한 일방적인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중 국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부 분이다.
이상으로 중국 영화주제의 변천사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했 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화주제도 많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각 각의 시대 상황에 맞는 영화 주제가 많이 제작되고 또한 흥행에도 성공함을 보여주고 있다시대의 시대상과 영화 주제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인과의 관계이다. 앞으로 중국 영화 주제 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우리는 같이 봅시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영화 속 주제의 변화(중국 영화)2

그 다음으로 70년대의 영화에 대해서 분석하도록 하겠다.
중국에서1970년대는 개방화 정책에 의해 경제가 조금씩 살 아나고 있었고 또한 정치적으로도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요구도 다 양해지기 시작하였다. 70년대의 중국에서 제작된 영화 주제를 살펴 보면, 주로 중국 공산당에 대한 찬양, 새로운 생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액션 영화에 대한 영화가 주류를 이루었다.이 중에 서 특히 액션, 중국 무술을 주제로 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는 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액션 영화의 발전은 중국 영화 발전에 큰 발판이 되었다.이러한 액션 영화들은 특히 젊은 층에서 인기 가 많았는데, 그때 이소룡이 주연한 액션 영화가 중국 영화계에 서 최고 기록들을 세웠다.
위의 두 편의 영화가 70년대의 중국 대표 영화라고 할 수 있 다. 한 편은 액션 주제의 영화이고, 또 다른 한편은 중국 공산 동에 대한 찬양을 주제로 만든 영화이다. 공산당 찬양에 대한영 화는 체제 안정을 꾀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대규모를 제작되어 상영되었다.
다음으로 80년대로 넘어가 보자. 1980년대는 중국이 본격적 으로 세계무대로 진출한 시기이다. 경제, 정치가 한층 발전, 안 정화 된 시기로 국민들의 생활수준도 이전보다 많이 향상되었다. 이 시기의 영화는 액션 영화 뿐만 아니라 사랑을 주제로 한 애 정 영화, 남자들의 우정을 그린 조폭 영화 및 소설을 각색한 영 화들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특히 유명한 소설을 각색해 만든 영화가 많이 등장한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 러나 이 시기에 흥행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분야는 남자들의 우정을 그린 조폭 영화이다. 이 조폭 영화는 전 세계 영화계에 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 시기에 조폭 영화를 못 본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조폭 영화들을 통해 많은 새로운 스타들도 나타났다.
위의 두 편의 영화가 80년대 조폭 영화의 대표작이다.이러한 조폭 영화는 중국영화 계에게도 거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이 조폭 주제영화도 중국 영화사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 다.
다음 90년대의 영화 주제에 대해 설명하겠다. 그때의 중국은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하고 있던 시기이다.또한 영화 산업도 많 이 발전을 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 관심 이 예전보다 휠씬 더 많이 기지고 있었던 시기이다. 상술한 영 화주제 들이 역시 계속 발전하고 있던 시기였다.
조폭 주제영화와 액션영화는 아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 시기에는 새롭게 애정 주제 영화가 사람들의 주목 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포 주제영화와 코메디 주제영화도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 할 만한 영화 주제는 코메디 영화주제이다.특히 주성치(周星驰)가 주연한 코메 디 영화를 비롯한 코메디 주제영화가 전국적으로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이 시대에서 대표적인 영화 주제는 바로 코메디 주제 영화이다.또한 코메디 영화와 함께 남녀간의 사랑을 그린 애정 영화도 많이 제작되어 사랑을 받았다.
상기의 영화가 90년대의 대표적인 영화이다. 아래에 있는 영 화중에서 한 편은 코메디 영화이고, 또 다른 한편은 애정주제 영화이다.이 둘은 다 사람중에서 인기가 아주 높은 영화이다.



다음으로 2000년대의 중국 영화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 당시 의 중국 상황은 이제 세계 속의 중국, 세계의 중심국가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이다.또한 개방정책이 절정에 달해 세계의 공 장으로 불러질 정도로 세계와의 교류도 많이 하고 있던 시기이 다.
이 시기의 영화도 시대에 맞추어 다양한 주제의 영화들이 제 작, 상영되었다.이 시기의 영화 주제에서 가장 큰 특징 중의 하 나가 바로 조폭 영화의 퇴락이다. 또한 그 동안 금기시 되었던 주제들에 대한 영화를 제작, 상영된 것 또한 이 시대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중국 역사 주제와 중국 황실에 관련된 주제의 영화가 다수 제작 되었다.이 시기에 사람들의 눈 길을 끈 영화는 경찰 주제영화이다. 액션 주제영화는 아직까지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영화 속 주제의 변화(중국 영화)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영화 산업의 발전이 눈부시게 이 루어 지고 있다.
이제 영화 산업은 단순한 예술의 한 장르가 아닌,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까지 발전, 변화하고 있다. 또한 영화는 우리 삶의 일부라고 해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사전 적 의미는 “작가가 체험한 '실재(實在)'를 시각(視覺)과 청각 이미지의 창작적 구성을 통해 재현(再現)하는 예술 행위”로 우리의 현실과 그리고 그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 에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화는 우리의 실제 생활 그리 고 우리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적 변화에 따른 영화 속 표현 관습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 살펴보는 것 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실제로 시대 흐름 및 발전에 따라 영화 속에서도 많은 변화 가 있었다.예를 들어 과학 기술이 발전에 따라, 그 시대의 인 물의 변화에 따라, 그리고 영화의 주제, 등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영화 속의 변화는 불가피한 변화이다.
본 장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영화 속 주제에 관해서 논하 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중국영화에 특정 지워서 알아 보는 것도 매우 흥 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중국의 영화 산업은 1905년부터 시 작 되었다. 중국 영화는 전 세계 영화의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중국 영화의 변화를 통해서 전 세계 영화의 변화를 볼 수 있다 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이라는 나라만큼 다 양한 문화, 민족 그리고 역사적 굴곡을 가진 나라는 드물기 때 문이다.
중국 영화의 특징은 한 시대에 상영되었던 영화는 당시의 중 국 사회 현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외국의 영화 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나라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겠 지만, 중국의 경우와는 약간 차이가 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먼저, 50 ∼ 60년대의 중국 영화 속의 주요 주제부터 분석을 하겠다. 특히 50, 60년대의 중국의 상황은 다른 선진국 및 주변 국에 비해서 경제, 정치 부분에서 많이 뒤처지고 있었던 시대 였다. 또한, 연 이은 전쟁, 중.일 전쟁, 해방전쟁으로 인한 사람 들의 삶도 아직까지 전쟁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그 시대 사람들은 삶의 일부분인 전쟁 이야기, 전쟁 영웅 및 신 화에 대한 주제의 영화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전쟁을 주제로 만든 영화가 흥행 면에서도 유리할 수밖에 없었 고, 또한 전쟁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의도적으 로 만든 부분도 있었다.
다시 말해, 중국의 건국 기념일은1949년으로 50, 60년대의 사 람들은 아직 전쟁에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전 쟁에 관한 주제로 제작된 영화는 대부분 그 당시에 제작된 영 화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당시의 중국은 연 이은 전쟁으로 인한 국민의 생활이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이런 국민의 궁핍 한 상황에 대한 영화도 상당량 제작되었고 또한 사람들의 눈 길을 끈 작품들이 많았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영화는 아래에 소개하는 두 편의 영화 로써 한 편은 전쟁을 주제로 제작된 영화이고 또 다른 한 편은 그 때의 국민의 궁핍한 생활을 주제로 만든 영화이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모두 그 시대의 국민들의 삶과 그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이다.

21세기 사회의 변화와 주거

- 가족의 변화 + 경제적 측면 : 산업구조의 변화, 소득/소비의 변화
- 사회적측면 : 도시화, 지방화, 환경보호, 가치관/라이프스타일의 변화

1) 가족의 변화와 주거
(1) 가구당 인원수의 감소 → 출산자녀수의 감소(장남, 장녀화 현상)
(2) 평균수명 연장 → 노인인구 급속히 증가

- 독신자용 주택 : 편리한 설비와 가구를 미리 갖추어 놓고 사람만 들어가서 생활가능
- 노인인구의 증가와 함께 그들을 위한 노인전용주택, 주거단지 건설활발
- 젊은 세대 : 상속받기 전 까지는 임대주거에 거주하는 경우 증가 또는 부모세대와의 동거를 위해 재고주택의 증개축

2) 산업구조 및 소득 소비수준의 변화와 주거
(1)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증가 → 맞벌이부부 증가 → 전업주부보다 가사노동시간 감소되므로 짧은 시간 안에 가사 일을 완성할 수 있는 편리한 주거시설이 요구

예1 : 시간, 에너지 절약형 가전기기
예2 : 부엌은 가정의 가사센터로 온가족이 가사에 참여
예3 : 공동주택등장 (생활서비스 해결가능)
예4 : 주택단지나 지역사회 내에서 생활서비스 가능한 네트워크 생성

(2)
- 산업 직업의 다양화, 소득수준의 향상 → 민간금융의 변화, 신용사회 확대
- 주택매매에 있어서 할부구입가능
- 주거의 고품질화 - 실내마감재료 고품질화, 설비의 안전화 및 고기능화, 평면의 다양화 및 가변구조화 : 유니버설 주거
(■ 미래의 주거공간 프린트 (4)유니버셜 주거 참고하고!! 유니버설 주거 예보면서 이게 어떤 목적에서 만들어 졌는지 알아둘 것 시험에 나온댔어!)

<화지의 필기>
(4) 유니버설주거
① 장애제거 : 문턱, 문폭조절, 경사로, 계단아래 조명
② 안전성 : 시각장애인용표시, 적절한 곳 손잡이, 계단아래 조명
③ 변화가능성 : 세면대 경사진 거울, 이동식수납선반, 낮은 높이의 스위치
④ 기타 : 숫자큰 전화기, 풋팅 오더 오프너(발끝으로 문여는거), 지하철 휠체어리프트, 레버식도어 손잡이, 여닫이

3) 도시화 지방화와 주거
(1) 도시화 : 도시화 현상의 심화로 인한 주거환경적측면에서는 부정적이나, 생활관련 편의시설의 제공이나 경제활동의 참가, 문화 및 정보의 취득은 도시화의 긍정적인 측면

(2) 지방화
- 인구가 지방도시로 역유입 되는 현상
- 상대적으로 싼 땅값에 도시와 다름 없는 서비스도 받을수 있으므로 주거환경적인 측면에서 유리
- 장남장녀화 부모 있는 도시로 회기하는 지방화 현상
- 지방도시는 대도시에 비해 전통적 생활을 중시하고 인적결합이 강하므로 지역사회 단위의 공동체 주거지를 형성할수 있을 것이다
- 고령자 가족과 젊은 가족이 모여서 함께 생활하는 협동생할주택(코하우징)
(■ 미래의 주거공간 프린트 (3) 코하우징과 3번째 장 참고하고!! 임용 몇 문제 나오므로 찾아보기!!)

4) 정보화, 첨단기술화와 주거
- 재택근무 증가(가정공간과 사무공간의 구분)
(■ 미래의 주거공간 프린트 (1) 재택근무가 가능한 주거 SOHO small office home office 소규모 사업장 재택근무!)
- 첨단기술화 : 주거와 접목하여 가볍고 튼튼한 건축재료의 발달로 에너지 절감효과/ 자동채광조절/ 로봇을 가사노동에 활용/ 토지부족의 한계극복 : 초고층주상복합건물
(■ 미래의 주거공간 프린트 (2) 지능있는 주거)

<화지의 필기>
(2) 지능있는 주거
· 주택에 자동화 시스템 도입 안정, 쾌적기능, 경제성↑
· 가족구성원에게 최적의 상태에서 생활할수 있게 하는 주택- 편리하지만 지나치면 삭막해짐
· 주요기능 : 화재, 가스, 방범자동감지, 자동경보, 식사메뉴컨설팅, 건강검진설비, 진동알림침대, 스케쥴관리로봇, 무선단말기통합쇼핑, 전자제품자동케어


5) 환경보호와 주거
- 공기정화설비, 정수설비, 조용한 공간을 위한 방음, 차음시설, 자연환경과 친숙, 자연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도록 전원생활 즐기는 별장, 전원주택

<화지의 필기>+ 복토주택, 비오톱 조사한거 알아두기
· 인간이 공생하는 주거, 생태주거
· 우리나라 주택공급이 시급해서 환경문제 생각하지 않음 → 최근 오래된 건물의 문제로 관심 급증
· 지붕잔디, 베란다정원, 공기정화, 정수, 방음차음

6)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의 다양화와 주거
미래의 주거양식 (1)욕실 (2)주방 주거 2030등 그냥 여러 가지 사진들을 보았어~

일본의 정신력 바탕인 사무라이 정신

사무라이 정신은 전통이다. 10세기경부터 오랜 시간 축적되었으므로 중세에도 암묵적이지만 지금처럼 뚜렷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사무라이들은 그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다. 사무라이 정신은 미화되기도 했겠지만 온전히 왜곡된 것은 아니다. 온당한 증거 자료가 존재하는 일본의 정신문화이다.
그러한 사무라이 정신은 일본을 이해하는데 있어 빼놓지 말고 조사해야 할 정신문화이다. 사무라이 정신은 그들의 유구한 정신유산으로 수많은 세대를 거쳐 내려와 정립되어 지금도 여전히 중요시되고 있다. 그것은 폭력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 폭력성 안에서 ‘진정한 사무라이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하는 그들 나름의 성찰을 통해 얻은 도의적인 정신의 체계이다.
사무라이 정신의 몇몇인 예의, 충의, 극기, 할복 등은 극단적인 면모도 보이고 있어 그 문화적 충격 때문에 언론이나 서적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무라이 정신을 추상적으로 넘겨짚고 있을 뿐이다. 사무라이 정신은 명실상부 일본인들의 민족성을 대표하는 뿌리 깊은 정신이기에 현재의 일본을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이다. 우리는 사무라이 정신의 가치를 폄하하는 일 없이 그 정신을 이해하여 일본을 이해하고, 일본인을 이해한 후 그들과 소통해야 할 것이다.

근대화와 사무라이

문화를 얘기할 때 서구 문명과의 교류를 통한 근대화는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일본의 개화기 시기에는 쇼군정부에 불만을 품은 무사계급인 사무라이가 도쿠가와 정권을 몰아내고 천황제를 복귀시켰다. 이로써 15세의 어린 메이지가 왕위에 오르고 권력은 개화를 원하는 대신들의 손에 놓이게 되었다. 근대화는 일본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그렇게 메이지 유신이라고 불리는 근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근대화가 진행되며 서구 문명은 무조건 좋고, 일본 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개념이 성립하진 않았다. 일본은 서구화가 진행되면서도 전통에 대한 고수의 목소리 역시 높았다. 심지어 언론이 앞장서 전통고수의 열을 높였다. 언론이 앞장서 전통고수를 외친 것은 일본사회의 대다수가 전통고수를 중요시 하는 경향을 가졌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이다. 언론의 의견이 정부, 사회에 반(反)했다면 곧바로 탄압의 대상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화가 진행되면서도 일본의 전통은 시대에 적응하며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거나 일본만의 개성으로 변화된다. 일본 특유의 문화가 성립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사무라이 정신도 그 중 하나이다. 무사도라고도 할 수 있는 사무라이 정신은 근대화 과정에서 재해석되며 일본의 정체성을 대표하게 됐으며 찬양 받아야 하는 정신이 되었다. 이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의『무사도』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미국 등의 서양 국가에 일본을 전하기 위해 쓴 책이다.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의 재해석을 통해 일본의 우수한 면을 알리고자 했다.『무사도』의 그러한 경향을 반영한 예로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의 얘기를 들 수 있겠다.

신겐의 영지는 산간 지역이어서 바다에 인접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필요한 소금을 토카이도에 있는 호죠로부터 조달받았다. 그런데 호죠는 신겐과 교전상태에 있지도 않으면서 신겐의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소금의 교역로를 차단시켰다. 이때 적의 딱한 사정을 들은 겐신은 신겐에게 서찰을 보냈다. 서찰에서 그는 호죠가 매우 비열한 수단을 썼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교전 중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소금만은 충분히 공급해 주겠다고 알리면서 "내가 귀공과 겨루는 것은 창과 칼이지, 쌀과 소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신념을 지키는 사무라이들의 모습이 일본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이다. 역사가 미화된 탓도 있겠지만 일본인들은 사무라이 정신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사무라이 정신은 이제 현대의 일본인들에게 깊숙이 뿌리를 내려 하나의 도의적 본(本)이 됐다. 축구선수나 야구선수에게도 사무라이 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이다.

4. 7인의 사무라이에 나타난 무사도
본격적으로 무사도가 등장한 것은 평화가 정착한 에도시대이다. 평화가 찾아오자 사무라이들은 과거 한껏 무용을 떨치던 사무라이들을 동경하게 됐고, 동시에 이념형으로 무사도가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물질을 초월한 이상을 만들게 됐는데 그에 따라 문(文)의 중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스스로 무사의 지위를 버린 철학자 나카에 토주(中江藤樹)는 문(文)과 무(武)의 덕치를 갖춘 사무라이의 위상을 세우려 노력했다. 그는 당시 사무라이들에게 “무사는 선비가 되어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사나운 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이상적인 무사도의 기틀을 잡았다. 그렇다면 무사도란 무엇일까.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영화『7인의 사무라이』에는 무사도의 핵심을 이루는 정신들이 녹아있다.
① 인(仁) : 주지하다시피 마을 사람들이 캄베이를 고용하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거절당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세를 돌아보며 흐느껴 운다. 그대로 마을에 되돌아간다면 연중행사처럼 반복되는 약탈로 인한 고통을 받아야 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흐느끼는 모습을 지켜보던 술꾼들은 “농사꾼으로 나지 않아 다행이다, 개팔자가 더 낫지”하며 마을 사람들을 비웃는다. 그때 카츠시로라는 사무라이가 “당신들은 동정심도 없소”하며 그들을 꾸짖는다. 후에 캄베이가 싸우기를 수락하고 스스로 사무라이를 고용하러 돌아다니는 며칠 동안 마을 사람들은 사무라이의 끼니를 해결해야 할 쌀을 도둑맞는다. 마을에 다시 갔다 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카츠시로가 알아채고 쌀을 사라며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던져준다.
이러한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사도이다. 또한 인(仁)은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배려의 마음이다.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예의의 근본이다.
② 의(義) : 마을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고용된 캄베이는 처음에는 그 싸움의 무모함을 자각하고 그들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마을 사람들은 싸울 만한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도 못하고 전투 경험도 없는데 상대해야할 도적이 40명이나 되는 것이다. “이건 놀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캄베이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하다. 하지만 캄베이는 무릎 꿇고 앉은 농민들의 풀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돌린다. 캄베이는 스스로 다른 사무라이를 구하러 다니다가 예전에 그의 수발을 들던 로지라는 사무라이를 만난다. 로지도 같이 싸우겠다고 하자 캄베이는 묻는다. “부도, 명예도 얻지 못할 걸세. 그래도 같이 갈 텐가?” 그 물음에 로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라고 대답한다. 사무라이의 정의는 부와 명예를 주지 않는 전쟁터에 그들을 이끈다.
의는 다른 말로 의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이것의 범주는 너무나 광대하다. 어떤 의미로서는 '의무(義務)'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이 틀리다. 베네딕트는 "의(義)란 자기 의무를 다하는 것을 말한다"고 서술했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의무에 대한 성실을 말하는 것이다.
③ 명예(名譽) : 도적들과의 싸움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명예는 얻을 수 없을 테지만 사무라이는 자신의 신념이 원하는 명예를 위해 자신을 던진다. 큐죠가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두 개의 조총을 빼앗아 오는 것을 보자 키쿠치요는 자신도 그에 못지않은 무를 가지고 있다는 걸 보이기 위해 과감히 적진에 홀로 들어가 총을 빼앗아 온다. 위험한 일이지만 상관없다. 사무라이에겐 명예를 위해 싸울 용기가 있다. 용기로 무장하고 자기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명예를 얻기 위해 전진한다.
명예란 자신의 이름에 의무를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지는 의무는 크게 '주군을 섬길 의무'와 '이름에 대한 의무', '그 외의 의무' 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이름에 대한 의무는 매우 중요한 의무를 갖게 되며 뜻하지 않게 명예를 손실당하면 매우 수치스러워함과 동시에 이름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 이것은 복수나 자결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④ 예의(禮儀) : 사무라이들은 필사의 싸움 끝에 비록 네 명의 사무라이를 잃었지만 도적을 모두 물리치고 승리하게 된다. 승리 후 농민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농가(農歌)를 부르며 흥이 나서 농사를 짓는다. 캄베이는 그들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이번에도 우린 졌군”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러더니 “이긴 건 저 농민들이지”라고 말을 이으며 이번 싸움의 의의를 정리한다.
예의는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동정적 배려가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서 정당한 것에 대한 존경, 나아가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공정한 존경이다.

『7인의 사무라이』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무라이의 덕목이 있다.

⑤ 충의(忠義) : 다이라 시게모리(平重盛)라는 사무라이는 “충을 행하고자 하지 불효가 되고, 효를 행하자고 하니 불충이 되는 구나” 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반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충돌이 발생하면 무사도는 충의를 선택하는 데 아무 주저함이 없었다. 여자들도 주군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도록 자식들을 독려했다. 무사는 목숨을 주군을 모시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겼으며, 명예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다. 무사의 교육은 모두 여기에 기초하였다.
⑥ 할복(割腹) : 할복은 단순히 목숨을 끊는 행위가 아니라 법률과 예법상의 제도였다. 무사가 자신의 죄를 뇌우치고, 잘못을 바로잡고, 수치심을 벗고, 사죄하고, 성실함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살의 방식 중 할복이 가장 고귀하다고 생각한다. 할복자살은 일본인에게 감동적이고, 애도를 연상시키고, 어떠한 혐오감도 주지 않는 죽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무라이 정신의 고귀함이 현대까지 이어지면서 일본의 현대인들은 자살을 미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의 사무라이

1) 사무라이의 성립
헤이안조 천황 정부의 궁정귀족들이 교토에서 세련된 문화생활을 즐기던 9세기에서 10세기경 무력의 소유를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 출현했다. 그들은 ‘부시(武士)’, ‘사부라이(侍)’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다. ‘사무라이’는 귀한 사람을 호의한다는 뜻의‘사부라이’가 바뀐 말이다.
귀한 사람을 호의한다는 뜻의 사무라이란 원래 전문가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적 기능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직능집단이었다. 그들은 군사전문가로서 명확한 자기정체성을 갖는 일본 최초의 사회집단이었다.
사무라이 문화가 성숙해감에 따라 그들은 용병으로서 봉사할 뿐 아니라 다른 사회집단에 비해 군사력에서 압도적인 경쟁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상황에 힘입어 농업사회의 가장 귀중한 경제자원인 농지의 지배에 손을 뻗쳐 갔다. 그러던 중 고대 사회의 권력구조가 무너져 왕실 세력이 쇠퇴해감에 따라 일본의 중세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무라이 계급도 함께 지위가 상승했다. 사무라이는 토지를 소유하는 영주가 되고 나아가 징세와 방위의 역할을 통해 본래 귀족 소유였던 토지마저 잠식해 갔다. 11세기경 사무라이 무사들은 독자적 위계구조를 가진 정치조직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무라이가 쇼군 정부라 불리는 반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면서 공식적으로 제도화 되었다. 일본 중세는 사무라이의 권력과 그에 상응하는 문신 귀족의 몰락이 특징인 시기이다. 이처럼 사무라이 무사계급은 그들만의 권력기반과 문화, 정체성을 구축했다.
한편 조정의 귀족들은 스스로 무사 귀족 계급으로 변신하지 않았으며 사무라이도 문신 귀족이 되자 않았다. 이들은 서로 병존하는 두 개의 신분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문신 귀족은 명목상으로 전통적인 권위를 가질 뿐이었고, 문신 귀족들은 매 시기마다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자를 나라의 합법적 지배자로 인정했다. 나라의 실질적인 군사지도자는 조정으로부터 ‘세이타이 쇼군(정이대장군)’ 이라는 칭호를 하사받고 나라를 통치하는 권한을 받았다.
이러한 사무라이의 위치는 뛰어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유지 능력이 바탕이 되었다. 사무라이에게 폭력은 스스로의 지배영역을 확대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이었다. 사무라이는 다른 일본 사회집단으로부터 싸움을 해결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힘을 가지는 사람들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2) 사무라이의 특권
사무라이는 세 가지 특권을 가졌다. 기리스테고멘(切捨御免), 타이토(帶刀), 묘지(名字)가 그것이다. ‘묘지’는 성(姓)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이고, ‘기리스테고멘’은 평민이 사무라이에게 누를 범했을 경우 그 자리에서 목을 벨 수 있는 특권이며, ‘타이토’는 칼을 허리에 차고 다닐 수 있는 특권이다. 이 특권들은 다른 계급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특권이다. 이렇게 전문적인 폭력 행사 능력을 사무라이가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농업부분을 그들이 지배할 수 있었던 바탕이기도 하다. 사무라이의 무(武)에 대한 신뢰와 폭력성은 일본의 고전 ‘원숭이 신의 이야기’에서도 나온다. 이야기에서 원숭이 신에게 인신공양으로 보내진 남자는 원숭이 신이 그에게 다가오자 칼을 꺼내어 위협하며 “만약 네가 신이라면, 이 칼은 너를 벨 수 없을 것이다. 시험 삼아 그 배를 찔러 볼까?”라고 말한다. 신이라 여기던 존재에도 자신에게 해가 되면 칼을 겨눌 수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자신보다 아래 계급에게는 어땠을까 생각하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특권에서 오는 사무라이 정체성의 핵심은 폭력 행사 기술의 숙련이었다. 이 점이 다른 사회집단과 그들을 구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는

일본인들은 조금만 불평이 있으면 문득 칼을 뽑아 서로 죽인다. 의심이 많아 부자간에 잠 을 잘 때도 칼을 풀지 않는다. 남자는 칼 셋을 차고 다니는데, 큰칼은 남을 죽이는 데 사 용하고, 중간 것은 남을 막는데 쓰고 작은 것은 자살용이다. 얼굴에 칼 흉터가 있으면 용 감한 자로, 머리 뒤에 있으면 비급한 자로 배척된다. 기뻐하고 성내는 빛이 당장에 나타 나고 속임수가 많다’

라고 말하며 일본의 무(武)의 폭력성을 말하기도 했다. 그런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사무라이의 특권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을 보아 일본이 사무라이의 무(武)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폭력만이 전부인 집단이라면 오랜 시간을 확고한 계급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무라이 계급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7%였다는 것을 상기하면 다른 계급이 받아주지 않는다면 사무라이는 존재할 수 없는 계급이었다. 때문에 무사도라는 사무라이 나름대로의 도덕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7인의 사무라이』를 통해 본 일본의 사무라이와 무사도

1.영화 선정이유
일본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영화의 선택, 그것은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우선, 옛 일본의 이질적 문화를 찾아내야 하는 선별적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영화 자체의 질적 수준에 따라 영화상의 문화 깊이와 넓이가 다르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이 제작한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가 세계 영화사상 비영어권 최고 작품으로 뽑혔다. 1954년에 나온 이 영화는 1950년대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선도적이고 획기적인 카메라 앵글과 스토리로 지금까지도 찬사를 받고 있다.
이번 발표를 통해, 이 영화를 일본 문화적 요소를 찾아봄으로써 재해석하고, 시대적으로 사무라이의 모습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싶었다.

2.영화에 대하여
1) 『7인의 사무라이』 줄거리
영화 <7인의 사무라이>는 식량을 수확하면 어김없이 도적들이 찾아와 수확한 식량과 여자들 약탈해가서 늘 굶주리고 누군가를 잃어야 했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약탈을 당하지 않고 풍족하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촌장의 결정으로 도적을 물리쳐줄 사무라이를 고용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재산이 없다. 오직 도적을 물리쳐줄 때까지 사무라이의 끼니를 해결해주는 조건을 제시할 수 밖에 없다.하지만 힘 있고, 의로운 일곱 명의 사무라이가 부와 명예도 없을 그 싸움에 참여하겠다고 나선다. 일곱 명의 사무라이들은 그 농민들의 참혹한 현실을 그냥 두고 볼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도적들이 척후병을 보내 전투가 임박했음을 감지하자 사무라이들 몇이 특파되어 도적들의 소굴을 기슾하며 전투는 시작된다. 사무라이들과 농민들이 합심한 결과 사무라이 네 명이 죽었지만 도적들을 물리치게 되어 농민들은 농가를 부르며 즐겁게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2) 영화 소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1954)는 영화 자체로도 걸작이지만, 이후 영화사에서 꽃피운 영화장르의 틀을 다진 영화이기도 하다. 평론가 마이클 잭은 <7인의 사무라이>가 임무수행을 위해 팀을 결성하는 내용을 다룬 첫 영화라고 밝혔다. <7인의 사무라이>는 이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뿐 아니라 <나바론>, <더티더즌>등 이후 만들어진 무수한 전쟁 영화, 강도 영화, 범죄 영화의 아버지뻘 되는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위대한 영화감독은, 그의 주된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후 50년 동안 액션 히어로들이 활개칠 공간을 마련해 줬다고도 할 수 있다.
3) 영화의 의도
영화가 제작된 시기 1954년은 일본문화론의 변용시기로 볼 때 부정적 특수성의 인식에서 역사적 상대성의 인식으로의 변화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특징을 반영하듯 아키라가 <7인의 사무라이>를 만들 때 품었던 주된 의도는 일본 고대 문화에 충실한 사무라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바로 이 시기는 전후 패배감에 빠져 있는 일본인들에게 희생과 충성이 대표되는 사무라이 정신을 강조함으로서 일본의 혼을 고취 시키려는 의도인

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외계인의 방문과 화성소년의 예언

얼마 전 영국의 한 매체에서는 미국 우주항공국(NASA)이 외계인이나 미확인비행물체(UFO)의 존재를 줄곧 부인하고 있지만 달 표면에 도착한 여섯 번째 미국인이자 아폴로 14호 비행사였던 에드가 미첼(Edgar Mitchell) 박사가 미국의 한 라디오와 가진 인터뷰에서 외계인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비행접시들이 지구를 방문하고 있으며 또 나사의 일부 관계자들과 ‘제3의 접촉(인류와 외계인의 직접 접촉)’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첼에 따르면 일찍이 외계인을 접촉했던 나사 관계자가 자신에게 알려주기를 외계인의 실제 모습은 ‘작은 체격에 큰 눈과 머리를 지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고 했다. 이 외에도 외계인의 과학기술은 고도로 발달해 인류의 과학기술은 전혀 비교할 수 없지만 외계인들은 인류에 대해 적의가 없다고 했다.

영국 매체에서 ‘외계인이 전에 지구를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전에 러시아의 ‘프라우다’는 화성에서 왔다는 소년의 예언을 보도한 적이 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보리스 키프리야노비치(보리스카라고도 한다)로 현재 14세이다. 보리스카는 4년 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이 화성에서 왔음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또 사람들에게 화성에서의 생활, 화성인들 및 지구를 방문한 신기한 경험들을 들려주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호킹은 영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화성에서 왔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화성소년’의 우주와 천문에 대한 지식은 이미 내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세계의 권위 있는 과학자들이 모두 그가 제출한 우주론과 미래세계에 대한 예언을 소홀히 할 수 없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프라우다의 보도에 따르면 보리스카는 1996년 1월 볼고그라드의 즈히리노브스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모친인 나데즈흐다는 의사이며 부친은 군인이다.

나데즈흐다의 기억에 따르면 보리스카는 생후 15일 후 스스로 고개를 들 수 있었고 18개월 때 이미 신문의 제목을 읽을 수 있었다. 또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었음에도 한자(漢字)를 쓸 수 있었다. 2살이 된 후에는 뛰어난 기억력으로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다. 또 신비한 모종의 장소에 정보를 얻기도 했다.

모친에 따르면 그는 때로 가부좌를 틀고는 화성, 행성계, 아득히 먼 문명 등 황당한 것들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는 매일 무슨 경전을 읽듯이 우주와 다른 세계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들 및 아득히 먼 공간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때부터 보리스카는 부모에게 자신이 전생에 화성에서 살았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과거 화성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한 차례 훼멸적인 대재난이 발생한 후 대기가 사라졌다. 때문에 당시 화성에 살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지하로 들어가야 했다. 그때부터 그는 늘 무역과 다른 연구를 위해 지구를 방문하곤 했다. 그는 혼자 우주선을 타고 다녔는데 그가 지구에 온 목적은 중국 서부지역에 탄생한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사명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명을 지니고 왔는지에 대해서는 도리어 분명히 언급하지 않았다.

2008년 보리스카는 보다 많은 ‘화성인’들이 지구에서 출생할 거라고 예언했다. 왜냐하면 지구에 장차 큰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외에 2009년에 지구의 대륙에 첫 번째 큰 재난이 발생할 것이며 이 재난은 신앙이 없는, 신을 믿지 않는 국가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두 번째 더 훼멸적인 재난은 2013년에 닥치는데 신국(神國)의 뭇신들이 관여해 지구상의 모든 오염을 갱신한다고 한다. 이는 ‘신국’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指導靈)’를 위해 모든 장애를 제거하고 신앙이 없는 나라의 인류가 위대한 영적 지도자의 감화를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사람은 2008년 중국 원촨(汶川)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이 바로 보리스카가 말한 예언과 일치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중국은 세계적인 인구대국이지만 전 국민의 1%만이 신앙을 갖고 있을 정도로 무신론이 판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보리스카는 자신이 언급한 ‘영적 지도자’가 예수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2010년에 들어와 전 세계적으로 ‘2012년 세계종말’에 관한 예언이 널리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보리스카는 지구에서 2011년 3차례 큰 재난이 발생하지만 이는 단지 지구의 한 대륙에서만 발생할 뿐이라고 엄숙히 경고했다. 물난리를 제외하고 또 돌림병이 크게 퍼져 중국에서만 약 100만 명이 사망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거주하는 지구에 대한 신국의 정화입니다. 인류는 관건적인 시각이 도달하기 전에는 각성하지 못하며 지상에는 늘 폭력과 전쟁이 존재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생명의 합일과 사랑의 힘 및 그 중요성을 알게 될 때라야만 비로소 우리의 모든 행동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는 또 “종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그 때가 꼭 2012년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중국에서 탄생한 위대한 영적 지도가가 신국으로 돌아가는 그날 비로소 발생할 것입니다. 최후의 재난, 최후의 말일이 도래하기 전까지 당신들 중 일부는 평화와 사랑의 중요한 의미 및 자신이 지구에서 기다려 온 사명이 무엇인지 영원히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가 있고 선량하며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장차 그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으로부터 답을 찾아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에서 탄생한 위대한 영적 지도가가 누구인가”하는 문제에 대해 보리스카는 명확히 누구라고 지적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아주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으며 또 수많은 신들이 그를 따라 함께 지구로 환생했다고 했다.

외계인의 지구 방문과 화성에서 왔다는 보리스카의 우주에 대한 이해 및 놀라운 예언은 역사적으로 남겨진 다른 많은 예언들과 서로 맞아떨어진다.

가령 유명한 마야예언에서는 일찍이 “이때 태양계는 은하계 중에서 이미 5천여 년의 대주기를 끝내게 된다. 대주기가 끝난 후 우주는 장차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마야예언에서는 이를 ‘은하계에 동화’한다고 지칭한다.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이 20년의 시기는 바로 지구가 대주기의 최후단계에 진입하는 ‘지구갱신기’이다. 이 시기에 지구는 완전히 ‘정화’될 것이며 갱신기를 거친 후 지구는 장차 은하계에 동화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것이다.

하늘은 미혹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미래는 대체 어떻게 될 것인지 각종 방식을 통해 점화해주고 있다. 설마 이것으로도 우리를 깨닫게 하기에 부족하단 말인가?        


‘화성에서 온’ 러시아 소년 보리스카. 자료사진

2012년 지구멸망 화성인 보리스카(?) 예언

보리스카 맞나 ..확실하지않아서 꼬 . 마 라고합니다(검색귀찮)

그 꼬마가 2009년 대재앙이잇을거라고했죠 ? 그래서 중국 지진떄문에 몇 십만ㅇ명이 죽고 실종되고 다치고

했다잖아요 2011년에 또다시 재앙이 한 대륙에 일어나고 2013년에 지구 멸망이있을거라는데



저는 이생각밖에안나는거예요

바로 좀비

제가 왜 이생각이 나냐면 다음웹툰 당신의 순간이였나 지금의순간이였나하는 좀비나오는거있죠? 2012년 1월 1일 에 좀비바이러스 퍼져서

재앙이 일어나고 (2011년재앙 한대륙에일어나는것)

그리고 2년만에 모든 나라가 감염되 2013년에 지구멸망이라는거

그거밖에 생각이안나네요 좀비 같은거 일어날리없지만 왠지 그런생각도들고 그러네요 .. 정말 꼬마의 예언이 맞다면 우리는 하루빨리

화성에 가서 살아야하나요 ? 화성이 가장 적합하다고 그러던데
화성 안가도 됩니다.

지구멸망?안합니다.

좀비바이러스?어떤 미친인간이 만들겟지만 거이다 실패할듯

지구멸망할떄면은 45억년후에 하는거임

왜냐하면 태양의 남은 수명이 45억년후잔슴?

45억년 후에 태양이 엄청 뜨거워지면서 지구에 피해를 입으며 폭발해 지구도 사라진다네요

지구멸망은 안하고요

해일이나 지진같은거 일어ㅏ서 피해만입는거임니다

그리고 그런 피해는 지금 안일어남

한 36년후던가?그때 소행성하고 지구하고 부딪힌다는데

그때 안좋을뜻

그때쯤 과학발전으로 방어막?같은것을 만들어서 피해를 줄일거같음

체택 4번만더되면 초수던가 돼요 제발 ㅋㅋ
찾으신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