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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3일 월요일

근대화와 사무라이

문화를 얘기할 때 서구 문명과의 교류를 통한 근대화는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일본의 개화기 시기에는 쇼군정부에 불만을 품은 무사계급인 사무라이가 도쿠가와 정권을 몰아내고 천황제를 복귀시켰다. 이로써 15세의 어린 메이지가 왕위에 오르고 권력은 개화를 원하는 대신들의 손에 놓이게 되었다. 근대화는 일본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그렇게 메이지 유신이라고 불리는 근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근대화가 진행되며 서구 문명은 무조건 좋고, 일본 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개념이 성립하진 않았다. 일본은 서구화가 진행되면서도 전통에 대한 고수의 목소리 역시 높았다. 심지어 언론이 앞장서 전통고수의 열을 높였다. 언론이 앞장서 전통고수를 외친 것은 일본사회의 대다수가 전통고수를 중요시 하는 경향을 가졌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이다. 언론의 의견이 정부, 사회에 반(反)했다면 곧바로 탄압의 대상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화가 진행되면서도 일본의 전통은 시대에 적응하며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거나 일본만의 개성으로 변화된다. 일본 특유의 문화가 성립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사무라이 정신도 그 중 하나이다. 무사도라고도 할 수 있는 사무라이 정신은 근대화 과정에서 재해석되며 일본의 정체성을 대표하게 됐으며 찬양 받아야 하는 정신이 되었다. 이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의『무사도』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미국 등의 서양 국가에 일본을 전하기 위해 쓴 책이다.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의 재해석을 통해 일본의 우수한 면을 알리고자 했다.『무사도』의 그러한 경향을 반영한 예로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의 얘기를 들 수 있겠다.

신겐의 영지는 산간 지역이어서 바다에 인접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필요한 소금을 토카이도에 있는 호죠로부터 조달받았다. 그런데 호죠는 신겐과 교전상태에 있지도 않으면서 신겐의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소금의 교역로를 차단시켰다. 이때 적의 딱한 사정을 들은 겐신은 신겐에게 서찰을 보냈다. 서찰에서 그는 호죠가 매우 비열한 수단을 썼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교전 중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소금만은 충분히 공급해 주겠다고 알리면서 "내가 귀공과 겨루는 것은 창과 칼이지, 쌀과 소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신념을 지키는 사무라이들의 모습이 일본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이다. 역사가 미화된 탓도 있겠지만 일본인들은 사무라이 정신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사무라이 정신은 이제 현대의 일본인들에게 깊숙이 뿌리를 내려 하나의 도의적 본(本)이 됐다. 축구선수나 야구선수에게도 사무라이 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이다.

4. 7인의 사무라이에 나타난 무사도
본격적으로 무사도가 등장한 것은 평화가 정착한 에도시대이다. 평화가 찾아오자 사무라이들은 과거 한껏 무용을 떨치던 사무라이들을 동경하게 됐고, 동시에 이념형으로 무사도가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물질을 초월한 이상을 만들게 됐는데 그에 따라 문(文)의 중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스스로 무사의 지위를 버린 철학자 나카에 토주(中江藤樹)는 문(文)과 무(武)의 덕치를 갖춘 사무라이의 위상을 세우려 노력했다. 그는 당시 사무라이들에게 “무사는 선비가 되어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사나운 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이상적인 무사도의 기틀을 잡았다. 그렇다면 무사도란 무엇일까.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영화『7인의 사무라이』에는 무사도의 핵심을 이루는 정신들이 녹아있다.
① 인(仁) : 주지하다시피 마을 사람들이 캄베이를 고용하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거절당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세를 돌아보며 흐느껴 운다. 그대로 마을에 되돌아간다면 연중행사처럼 반복되는 약탈로 인한 고통을 받아야 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흐느끼는 모습을 지켜보던 술꾼들은 “농사꾼으로 나지 않아 다행이다, 개팔자가 더 낫지”하며 마을 사람들을 비웃는다. 그때 카츠시로라는 사무라이가 “당신들은 동정심도 없소”하며 그들을 꾸짖는다. 후에 캄베이가 싸우기를 수락하고 스스로 사무라이를 고용하러 돌아다니는 며칠 동안 마을 사람들은 사무라이의 끼니를 해결해야 할 쌀을 도둑맞는다. 마을에 다시 갔다 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카츠시로가 알아채고 쌀을 사라며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던져준다.
이러한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사도이다. 또한 인(仁)은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배려의 마음이다.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예의의 근본이다.
② 의(義) : 마을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고용된 캄베이는 처음에는 그 싸움의 무모함을 자각하고 그들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마을 사람들은 싸울 만한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도 못하고 전투 경험도 없는데 상대해야할 도적이 40명이나 되는 것이다. “이건 놀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캄베이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하다. 하지만 캄베이는 무릎 꿇고 앉은 농민들의 풀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돌린다. 캄베이는 스스로 다른 사무라이를 구하러 다니다가 예전에 그의 수발을 들던 로지라는 사무라이를 만난다. 로지도 같이 싸우겠다고 하자 캄베이는 묻는다. “부도, 명예도 얻지 못할 걸세. 그래도 같이 갈 텐가?” 그 물음에 로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라고 대답한다. 사무라이의 정의는 부와 명예를 주지 않는 전쟁터에 그들을 이끈다.
의는 다른 말로 의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이것의 범주는 너무나 광대하다. 어떤 의미로서는 '의무(義務)'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이 틀리다. 베네딕트는 "의(義)란 자기 의무를 다하는 것을 말한다"고 서술했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의무에 대한 성실을 말하는 것이다.
③ 명예(名譽) : 도적들과의 싸움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명예는 얻을 수 없을 테지만 사무라이는 자신의 신념이 원하는 명예를 위해 자신을 던진다. 큐죠가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두 개의 조총을 빼앗아 오는 것을 보자 키쿠치요는 자신도 그에 못지않은 무를 가지고 있다는 걸 보이기 위해 과감히 적진에 홀로 들어가 총을 빼앗아 온다. 위험한 일이지만 상관없다. 사무라이에겐 명예를 위해 싸울 용기가 있다. 용기로 무장하고 자기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명예를 얻기 위해 전진한다.
명예란 자신의 이름에 의무를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지는 의무는 크게 '주군을 섬길 의무'와 '이름에 대한 의무', '그 외의 의무' 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이름에 대한 의무는 매우 중요한 의무를 갖게 되며 뜻하지 않게 명예를 손실당하면 매우 수치스러워함과 동시에 이름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 이것은 복수나 자결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④ 예의(禮儀) : 사무라이들은 필사의 싸움 끝에 비록 네 명의 사무라이를 잃었지만 도적을 모두 물리치고 승리하게 된다. 승리 후 농민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농가(農歌)를 부르며 흥이 나서 농사를 짓는다. 캄베이는 그들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이번에도 우린 졌군”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러더니 “이긴 건 저 농민들이지”라고 말을 이으며 이번 싸움의 의의를 정리한다.
예의는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동정적 배려가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서 정당한 것에 대한 존경, 나아가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공정한 존경이다.

『7인의 사무라이』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무라이의 덕목이 있다.

⑤ 충의(忠義) : 다이라 시게모리(平重盛)라는 사무라이는 “충을 행하고자 하지 불효가 되고, 효를 행하자고 하니 불충이 되는 구나” 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반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충돌이 발생하면 무사도는 충의를 선택하는 데 아무 주저함이 없었다. 여자들도 주군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도록 자식들을 독려했다. 무사는 목숨을 주군을 모시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겼으며, 명예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다. 무사의 교육은 모두 여기에 기초하였다.
⑥ 할복(割腹) : 할복은 단순히 목숨을 끊는 행위가 아니라 법률과 예법상의 제도였다. 무사가 자신의 죄를 뇌우치고, 잘못을 바로잡고, 수치심을 벗고, 사죄하고, 성실함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살의 방식 중 할복이 가장 고귀하다고 생각한다. 할복자살은 일본인에게 감동적이고, 애도를 연상시키고, 어떠한 혐오감도 주지 않는 죽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무라이 정신의 고귀함이 현대까지 이어지면서 일본의 현대인들은 자살을 미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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