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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일 목요일

<악의 논리>중동분쟁의 시나리오

973년 7월 17일과 1978년 4월 27일에 이라크에서 발생한 두건의 쿠테타의 배후를 살펴보면 소련이라는 보도가 있다. 첫번째 쿠테타로 소련의 원조를 받아 자히르 국왕을 추방시키고 다우드가 대통령의 지위에 올랐다. 두번째 쿠테타로 소련의 원조를 받아 이 다우드를 몰아내고 타라키가 정권을 수립하게된다. 친소파적 성향으로 정권을 잡게된 다우드 대통령이 소련과의 관계를 끊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세력을 몰아내고 다른 방법으로 나라를 이끌어나가고자 할 때 이 두번째 쿠테타가 일어나게 되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조를 받기로 약속하고 귀국하는 도중 소련의 폭격에 의해 다우드가 살해되었다는 점을 볼 때 그 잔인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하여 아프가니스탄에 소련의 꼭두각시인 타라키의 공산정권이 세워졌다.

아프가니스탄에 공산정권이 세워진 후 민족 독립운동은 더욱 활성화 되었다. 특히 동향을 살펴볼 민족은 파탄족과 발티족이다. 파탄족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양쪽에 걸쳐서 살고있었는데 영국의 침략정책에 의해 두 국가로 분열되고 말았다. 양 국의 파탄족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파크투니스탄>건국운동을 계속하고있다. 파탄족은 소련에게서 무기를 원조받아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게릴라 활동을 실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타라키 공산정권이 성립되고 그 정권이 주로 타직족이 차지하자 파탄족은 타라키 공산정권을 향해 게릴라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의 타라키 공산정권은 혼돈에 빠져있다. 그 이유는 공산정권이 이슬람의 전통을 경시하는데 있다. 소련의 배경을 너무 맹신하고 공산주의 독재로 많은 이슬람교도들의 반발을 사고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여려 중동국가들은 국가의 경계가 아니라 민족의 경계로 소련과 중공 등을 배경으로 각 민족들이 기존의 국경으로 형상된 나라가 아니라 민족단위로 구성된 새로운 나라로 독립하려고 게릴라 활동을 실시하고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군사력으로 고산정권을 세우기만 하면 자기의 영역으로 포함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이슬람교도의 저향력은 소련의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것이다. 제정러시아가 키르기즈 타직 투르크멘 우즈벡 등 여러 민족을 침략했을 때도 이들 이슬람 민족들은 맹렬히 저항했다. 소련은 1978년 4월 쿠테타 후 반소게릴라에게 시달리자 또다시 9월에 더 친소적인 인사로 아프가니스탄의 쿠테타를 감행한다. 이는 대대적인 반소게릴라의 숙청을 의미한다.

미국이 1975년 베트남에서 후퇴하자 소련은 1976년 앙골라 공습을 감행해 소련의 지배하에 두는데 성공한다. 그후 1978년 1년동안에 아프가니스탄과 남예멘 두 나라는 소련의 직접개입으로 친소좌파정권에서 공산주의 정권으로 바뀐다. 소련의 목표는 멕킨더의 심장지역이론의 명제 ‘심장지역을 제압하는 자는 전세계의 섬을 제압한다’의 실현이다. 여기서 전세계의 섬은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합친 것이다. 심장지역을 현 중앙아시아라고 할 때 소련이 원했던 것은 앙골라에서 출발하여 이디오피아 남예멘 오만해방전선 발티족 아프가니스탄으로 연결되는 회랑의 형성이다. 만약 이것이 성공이 된다면 세계 석유의 흐름이 단절되고 유럽과 아시아도 단절과 혼란을 야기시킨다. 즉 대공황이 발생할 것이며 이것은 제 2의 십자군 전쟁의 발발을 의미한다. 이 회랑형성에 대한 노력은 이란 혁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란혁명은 팔레비체제가 붕괴하고 이슬람교의 지도자 호메이니에게 정권을 넘긴 혁명을 말한다. 우선 팔레비체제는 서구체제에 따라 근대화를 성취 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 이슬람세계의 이슬람법을 경시했다. 그 결과 팔레비 체제는 겉으로는 미국의 최신식 무기를 지니고 있지만 내부적인 결함이 있었다. 이 틈을 타 소련이 회랑 형성을 위해 이란을 목표를 삼고 있고 이를 직감한 미국은 쿠테타를 일으켜 소련의 개입을 불러들이느니보다는 차라리 호메이니라는 이슬람 지도자에게 정권을 넘겨 반(半)국가적인 상태에로 두는 것이 미국에게 더 이익이라는 판단을 했다.

최종적으로 이란을 버려도 무방하다는 결론은 하우스호퍼의 통합지역론에서 비롯되었다. 통합지역론은 세계를 몇개의 덩어리로 분할하여 그 지역이 통합적인 세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통합지역론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영향력 확대로 터키 이란 파키스탄 등이 서방지역의 영향력권으로 포함되어 그 이론이 빛을 잃은듯 보였다.(하우스호퍼가 이론적으로 나누었던 지역과 현실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베트남전에서 전력을 낭비하고 소련이 군사적으로 성장하고 중동으로 진출하려는 역사적 사건을 볼 때 다시 한번 논의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 시점은 통합지역이론보다 좀더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데 소련의 힘이 더 커져서 미국이 한걸음 물러나 이론적 지역구분에 현실을 맞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평화협정도 이러한 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만일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무력대립을 한다면 미국은 통합지역이론의 지역구분을 현실화할 장애물이 될 것이다. 특히 통합이론의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고 있는 지역 즉 유로아프리카(미)와 판 러시아(소)의 경계선과 멕킨더가 주장한 심장지역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회랑의 교차점이 호르무즈 해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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