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차별은 바로 ‘우리’대 ‘그들’이라는 이항대립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로 대변되는 집단이나 군집들은 정상적이며, 선하고, 우월하며, 중심적이고, 보편적이다. 이에 반해 ‘그들’로 대변되는 집단이나 군집들은 비정상적이고 악하고 열등하며 주변화되고 일탈적이다. 사회 내의 모든 집단들은 바로 ‘우리’라는 지위를 쟁취하기 위해 경쟁하고 투쟁한다. 그리고 일단 ‘우리’라는 위치를 확보하게 되면 자신들과 연대할 수 있는 집단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집단들은 ‘타자(the other)’로 만들어 구분하거나 ‘그들(them)’로 규정하며 적대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 ‘타자’들을 소수자, 약자의 위치로 몰아간다.
소수자, 약자들에 대한 이미지는 형성되는데 이러한 이미지 형성에서 가장 커다란 기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의 작용과 기능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의 보도행위인 것이다. 여기서 언론의 보도행위란 단순히 사건이나 사안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 약자에 대한 보도를 통한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언론의 사회적 위치가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 있고, 중심 세력권의 범위에 속하기 때문에 보수적 성격을 띄며, 중산층 이상을 지향하고 있어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에 민감하다. 즉 이러한 언론의 위치가 언론을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 Ideological State Apparatus)로 기능하게 만든다. 언론의 이러한 사회적 위치로 고려해 볼 때, 소수자에 대한 이슈는 이들의 하나의 ‘다룰만한’ 기삿거리로만 인식되고, 주요 사안으로 간주되기 어려운 근원적 취약성을 태동하고 있다.
반면에 운디드니 사례처럼 기자가 나름의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그들을 대변하지만 소수자 약자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전문지식이 빈약하기 때문에 단순히 그들의 어렵고 힘든 환경에만 주목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언론사 내부에 전문가도 없고, 관여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수도 적기 때문에 사건, 사고 발생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도되기 어려웠다. 모두 단지 ‘그 것’에만 주목했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각자 나름의 ‘사회정의’라는 가치를 따르고 있고 그에 따라 보도를 했지만, 그것에 매몰되어 전반적이고 제대로 된 보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복합적인 상황을 같이 전달하는 ‘공정성’의 원칙이 결여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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