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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8일 수요일

사회정의와 언론보도

언론의 역할은 단순한 사실 보도에 있지만은 않다.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고 사건의 본질을 파헤침으로써 올바른 여론 형성과 사회 계도의 역할을 선도하는 매체이다. 이러한 언론의 역할과 힘을 빗대어 '언론은 제4의 권력'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언론은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사회적 조정 역할을 한다. 언론은 사건과 정보를 설명하고 해석하고 평가한다. 그것은 합의를 창출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갈등을 해소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사회정의를 구현해야한다는 언론의 역할에서 ‘정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 내에 존재하는 세 가지의 상호 연관된 불균형을 통해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고자 한다.
먼저, 이념 지형에 불균형이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의 정치를 지배적으로 규정해온 것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자유주의(Liberalism)다. 정의가 자유·행복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도덕의 문제라는 점을 상기시켜볼 때, 자유주의에서 정의로운 사회란 선택의 자유가 극대화된 사회다. 공리주의는 행복을 효용(utility)으로 계량화하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 공리주의·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좋은 삶(good life)’과 ‘공동선(common good)’,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categorical imperative)’을 동원한다. 또,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 불균형이 존재한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더 나아가 ‘자유시장 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경제 활동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사회가 됐다. 따라서 시장이 요구하는 가치가 공정성과 정의에 바탕을 둔 가치들을 대체했다. 상품화될 수 없는 가치,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가치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미국 사회에서 경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개인과 국가, 공동체 사이에 불균형이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지나친 개인주의는 공동체 의식의 쇠퇴를 가져 왔다. 이는 큰 문제다. 도덕의 문제에 있어서 국가가 중립적이라는 것은 시장이 중립적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화이며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이 사회적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보도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에 입각하면 우연성에 의한 차이로 얻는 이익을 개인이 전부 차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우연적으로 또는 주어진 환경의 차이를 통해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면, 미국은 다인종국가로 현재 헌법상 모든 국민이 평등한 나라고 차별받지 않는다. 하지만, 백인의 헤게모니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대학교 입학비율, 화이트칼라의 비율 등에서 유색인종은 백인에 비하여 많이 떨어지고 있고, 유색인종 가정이 백인가정보다 경제적 수준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발생되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소수집단우대정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책에서 샌델교수는 소수집단우대정책 중 하나인 법학전문대학원의 입시를 예로 들고 있다. 백인 여성인 홉우드는 대학 성적과 입학시험 점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집단우대정책으로 인해 로스쿨 시험에 불합격한다. 단시 소수집단우대정책으로 인해 불합격한 홉우드는 소수집단의 합격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
사실 형평(같은 것은 같게 대하고,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원리)의 개념을 살펴보면, 홉우드 등은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형평성 있는 대우는 받고 있다. 백인은 유색인종에 비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이익을 얻고 있고,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 점에서 형평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계층이 그렇지 못한 계층에서 절대적 평등을 내세워 똑같은 기회의 부여와 권리의 부여를 요구한다면, 하위계층은 우위계층을 절대로 넘어설 수 없다. 즉 출발선부터 하위계층은 지는 게임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평등이라는 탈을 쓴 불평등에 불과하다.

모든 사람이 기회의 균등 즉 똑같은 출발선에서 인생이란 게임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원시적 차별을 현실적으로 없애기 힘든 사회구조 안에서 ‘사회정의’란 무엇이고 과연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 것이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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