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라는 책은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록이다. 논어의 성립과정은 몇가지 이설들이 존재한다. "자장이 허리띠에 (공자의 말을) 기록하였다."("子張書諸紳", 위령공편 5장) 라는 말이 논어에 나오는 것으로 봐서 아마 공자 당대에 공자의 발언들을 제자들이 기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가 보는 논어 텍스트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성립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공자의 제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증삼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 논어에 나오고 전국시대 초기에 죽은 맹경자의 시호가 그대로 나오는 것으로 봐서 논어의 성립연대는 빨라도 전국초기 기원전 400년 전후로 보고 있다. 대략 공자 사후 70여년 뒤이다.) 논어의 대화편들은 맹자에 비해 단편적인 발언들만 나와 있어서 그 대화의 배경상황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발언이 구체적으로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의도를 깔고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 원래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아마도 구전의 과정에서 배경은 사라지고 그 발언만 남게 된 것이 이유일 것이다.
유교의 근본 사상이 된 〈논어〉는 간단히 말하면 공자의 어록이다. 공자의 언행과 사상, 그가 제자들이나 당시의 위정자들 혹은 은자들과 나눈 단편적 대화를 기록해 두었다가 공자 사후에 제자들이 책으로 엮어졌다는 설이 있으며, 한나라 시대에 어느 정도의 원본이 만들어지면서 〈논어〉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많이 사용하고 있는 〈논어〉는 송나라 시대 주희에 의해 만들어진 「논어집주」이다.
Ⅱ. 논어의 중요성과 읽어야 할 필연성
서양 사상의 가장 큰 원천을 그리스도의 사상이라 한다면, 동양 사상의 원천은 유교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종교로서 사람의 영혼을 구제하려 한 구세주라면, 공자는 인간이 현실 생활에서 주어진 문제에 대해 해결할 삶의 지혜와 방법을 가르쳐 준 인류의 스승이었다. 동양인은 수천 년에 걸친 역사 속에서 공자의 가르침인 유교 사상에 의해 성장해 왔고, 이 영향 속에서 자라 왔다.
유교 사상이란 〈논어〉에서 나온 사상이요, 〈논어〉는 곧 유교 사상의 중심 경전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말씀인 〈논어〉는 우리의 인격을 닦고 일생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경전인 셈이다. 시대가 점차 고도 문명사회로 발달해 나감에 따라 자칫 상실하기 쉬운 삶의 지혜를 풍부하게 해 주고,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세상을 보는 값진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 논어를 살아가면서 꼭 한 번쯤은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공자는 그의 생애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생을 교육을 위해 헌신하였던 교육가였다. 공자는 평생동안 도를 얻기 위하여 애썼다. 공자는 그 도를 얻기 위하여 교육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공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도의 가치를 자신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공자의 이 말은 도의 경지라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살아 생전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한 도란 무엇일까? 공자의 ‘도’란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인 ‘인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인도관의 요체는 자세히 살펴보면 인과 예로 위인과 치국의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인과 예가 위인과 치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은 『논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모형제를 공경하면서 윗사람을 해치는 사람은 드물고, 윗사람을 해치지 않는 사람 가운데 혼란을 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유약의 말인데 어진사람은 사회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나라의 안정을 가져 온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이 말로 미루어 공자는 유약에게 평소 인과 예의 실천에 관한 언급을 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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