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하버마스가 『공론장의 구조변동』 신판 서문에서 자신의 공론장 개념이 제한적임을 인정했듯이, 이 부르주아 공론장은 고대부터 구성되어온 다양한 공론장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이 부르주아 공론장이 공론장의 전부인양 잘못 오해되고 있다. 서구사회에서는 1970년대에 넥트(O. Negt)와 크루게(A. Kluge)가 부르주아 공론장의 배제적인 성격을 지적하면서 프롤레타리아 공론장이라는 대항공론장 개념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노동의 경험에 뿌리내린 노동자의 공론장은 부르주아 공론장보다 더 많은 보편성을 가질 뿐 아니라 생산의 차원으로 공론장 개념을 확장한다. 톰슨(E. P. Thompson)은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에서 선술집과 집회에서 구성되던 노동자의 공론장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따라서 교양을 가진 이성과 법치주의라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특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공론장의 다양한 분화와 발전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편협한 견해이다.
그 형태가 다양함에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공론장을 관통하는 중요한 원칙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평등한 발언권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이를 이세고리아라고 불렀고, 현대인들은 이를 표현과 발언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라 부른다. 공론장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개된 장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과 다른 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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